레전드의 기억


"그걸 혼자서 한다고?"
"네에, 혼자서 해보려고요"

'아니 ROADM 장비를 어떻게 혼자서 하려고 하지?
Cross Connection도 있어서 쉽지 않을 텐데...'

LG때 비슷한 장비를 10명 엔지니어가 만들었었고
그 이후 중견 업체에서는 5명 정도가 만들던 터라
결과물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하겠다는 엔지니어의 의지를 이길 수도
True 엔지니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는 법,
그렇게 프로젝트는 시작됩니다.

스케줄의 반이 지나갑니다.
보이는 결과물이 아직도 없습니다.
건물로 치면, 지하 기반을 다듬고 있는 거죠.

마음은 조급하지만, 스스로 다독이면서 기다립니다.
후반부의 반이 지나갈 무렵,
드디어 1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2층이 올라가고, 순식간에 5층까지 완성됩니다.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혼자서 만든 제품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Quality였습니다.
버그도 순식간에, 새 기능도 순식간에 적용했죠.

생각해 보니,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이전에는 버그가 나오면, 누가 담당자인지
찾는데 며칠 밤낮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담당자가 한 명이다 보니,
그리고 전체 구조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으니 쉬울 수밖에요.
참 슬기로운, 그리고 용기 있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렇게 엔지니어 길님은
제 마음속에서 레전드로 남아 있습니다.
이게 벌써 7년 전 일이고요.


(뒷 이야기)
10명 혹은 5명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던 것은
구조적인 환경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넓은 분야의 기술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library를 제공합니다.
마치 내부 오픈소스 프로젝트 같은 것이죠. (active가 100여 개 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고, 깊음을 동시 유지할 수 있는 엔지니어는 흔치 않죠.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by 제임스 | 2017/12/19 21:51 | 메인스토리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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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君 at 2017/12/19 23:29
저는 그런 레전드의 부사수로 첫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덕분이 많이 성장했어요. 레전드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하고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하게 됩니다.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7/12/20 11:06
게다가 영국인 레전드 였겠네요. (맞겠죠?)
이제 시니어 엔지니어도 되셨으니, 이제 곧 스스로 (자수성가) 레전드가 되실 것 같습니다. 멀리서 응원합니다. L君님.
열심히 배우셔서, 나중에 고국을 위한 전설을 만드시길..
Commented by L君 at 2017/12/21 05:06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런던에 온지는 이제 겨우 2년 됐어요. 사수님은 지금 캐나다 어디 계신다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안되네요.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에 돌아갈 생각입니다. 하하.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7/12/21 22:41
네에 돌아오시면 얼굴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전설과 더불어....
Commented by 사포 at 2018/01/15 12:46
이런 글을 보면 우리가 협업을 만만하게 보지 말아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의 기억과 상황이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버전관리니 이슈트래킹 같은 서비스를 쓰는데 제대로 못써도 문제고 하니...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8/01/16 22:34
네에 맞습니다. 사포님,
사실 소프트웨어는 협업이 전부죠.
'함께 일하는 것' 이건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함께 웃으며 지낼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인생에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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