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회식비가 있어서 반드시 써야 해요.
2차는 가면 안 되고 8시까지 1차를 끝내야 하죠.
소주는 2병까지 시킬 수 있고요.
지침이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사실 회식을 하기는 하는데,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팀은
1년마다 완전히 다시 짜여져요.
한팀마다 100여 명 정도 되는데
일 년마다 헤쳐모여 하다 보니,
올해는 이 팀에서 일하지만, 내년에는 어느 팀에서 누구와 함께 일할지 모르죠.

그러다 보니, 팀원이라는 생각도 거의 없고,
그저 모여서 일하는 곳이다라는 생각이 큽니다.
개인주의적으로 되는 것은 당연하고요.
회사도 그것을 원하는 것 같고 말이죠.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연결되는 흐름이 필요한데
위에서는 그냥 소프트웨어 하면 다 같은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나마 하드웨어 안 시키는 게 감사한 거죠.

이러다 보니까, 매년 새로운 일을 하기도 하죠.
회사에서 이걸 의도한건지도 모르겠구요.
시간도 별로 주지 않아요.
예를 들면, 안드로이드 1달 공부하고, 3개월 만에 제품 만들어 내라
이런 식이죠.

희한한 것이, 다들 결과물을 만들어내요.
그러다 보니, 회사는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이런 형태의 팀 운영이 심화되는 것 같고요.

그리고
구글, 어도비, HP같은 곳과 Co-work을 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또 그런 곳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팀장님으로 오시니
서구의 시스템을 따라가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죠.

좀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태해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데는
괜찮은 방법이다 라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사실, 매년 많은 인력이 들어오고,
적응하지 못한 친구들은 2~3년 내에 회사를 떠나죠.
이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요.


요즘 기술의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회사에서도 Push가 더 심해지고 있죠.
그 와중에도 자율출근제는 하는 것 보면 신기할 뿐이죠.

저 같은 경우, 출근차를 타려면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해요.
집 앞에서 7시에 버스를 타죠. 좋아요.
퇴근은 대부분 11시쯤에 하는데 그때는 근처에서 내려주고요.
집에 와서 씻고 잠자는 것을 반복하죠.

가끔 일하다 보면 늦어서 새벽 2시에 끝나기도 하는데
퇴근과 관계없이 출근은 지각하면 안 돼요.
3~4시간 자고 또 나오는 거죠.

그래서 회사에는 잠잘 수 있는 곳이 있어요.
퇴근버스 놓치면 저도 그곳에 가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놀랐죠.
시설이 좋아서, 거기서 늘 사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나마, 저는 괜찮은 편이죠.
팀을 담당하는 이사님은 늘 밤을 새운다고 보면 되요.
당연히 주말도 없고요.
1년에 집을 2번 가셨다고 하니, 참 할 말이 없죠.

그런 이사님이 시험하시다가,
네, 직접 다 시험하세요~
문제가 생기면 전화 오죠.
새벽 5시에 '이것 좀 고쳐줘야겠다' 하면 그냥 가야 해요.


회사에서 블로그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죠.
다 막혀있고요. 왠만한 웹에는 Post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개인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이런 것 전혀 못하죠.

회사에서 보안에 민감하다 보니,
어떤 웹을 접속하는지 다 지켜보고 있고요.
제 PC에는 나비가 하나 떠있는데,
파일 하나 받거나, 보내려면 나비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죠.
심지어 팀 내에서도 그래야 하다 보니, 조금 불편하기는 해요.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그저 일만 하는 거예요.
개인적인 것은 다 끊겨 버리는 거죠.
회사에서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고요.
블로그나, 친구 싸이라도 보고 싶으면 집에서 하는 거죠.
근데 집에 가면 11시가 넘으니, 주중에는 거의 못한다고 봐야 하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걱정되는 것은 딱 하나에요.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고, 잠도 많이 못 자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쉽거든요.
틈틈이 건강을 챙겨야 해요.

건강이 안 좋아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있었는데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친구였죠.
조금 무리한다 싶었는데, 불행히도 몸이 안 좋아졌어요.
그 친구 자리는 구석으로 옮겨졌고,
아무 일도 Assign되지 않았죠.
떠나라는 메시지로 이해하고 회사를 떠났죠.

조금 불만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인데,
어떻게 보면, 도움이 되지 않는 인원을 챙겨줄 만한 여유가
회사에는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건강은 제가 잘 챙겨야죠.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으니
제 자신이 기특하답니다. 하하"


오랜만에 만나 얼굴 본 후배인데,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합니다.

외부에 보이는 빛 속에는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후배의 모습이 보여서요.

그나저나,
다른 후배에게서는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대단한 성과를 내는 회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들려주세요.






by 제임스 | 2011/01/23 23:42 | 메인스토리 | 트랙백(2)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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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ktarcadia's.. at 2011/01/24 11:35

제목 : Skywalker의 생각
외부에 보이는 빛 속에는 그림자가 있고,그 그림자 속에서 빛을 찾으려 는 이라는 구절이 참으로 와닿는다....more

Tracked from polcool's me.. at 2011/01/26 11:46

제목 : 효복의 생각
이 눈물나는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이야기같은 느낌이구나-_-.. 그래도 잘 적응해가는 이효복이 장하다!!!!!...more

Commented by 카큔 at 2011/01/24 00:38
힘내라는 말씀 안드리겠습니다. 엄연히 시스템의 불합리적인 면이 심각하고 기업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네요.
사람 났고 일이지 일나고 사람난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과 기업 문화가 당연하다는 점에서 아쉽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몸아프면 이것이고 저것이고 다 필요 없어요.
몸 버려가면서까지 회사에 일해봐야 절대 그거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냥 "너는 한번 쓰고 버릴 SCV일 뿐이지!" 라고 하고 버릴 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4 18:4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카큔님,
저도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은데,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하나이다 보니….
Commented by at 2011/01/24 00:41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대단한 성과를 내는 회사...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도했고 또 한 번 실패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했으니까요.
살다 보면 또 다시 기회가 오겠지요.

꿈을 잃는다면, 그리고 삶에 매몰되어 버린다면
그게 진짜 죽은 삶이 될터이니까...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4 18:41
정말요? 그래서 조용하셨던거군요.
젊은 나이에 도전 안하면,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2~3년간 쓰라린 기억이 있죠.
선님도 그걸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약이 될겁니다. ^^
Commented by elixir at 2011/01/24 09:13
아, 그 후배가 저와 같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슬픈 아침입니다.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4 18:41
elixir님, 그러게요.
슬픈 미소 같은 느낌.
Commented by DukY82 at 2011/01/24 09:48
사람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왜 다들 모를까요.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지...
잘 이겨 나가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4 18:41
네, 격려 감사드립니다.
좋은 기업이 이기면 좋겠어요.
Commented by gw8 at 2011/01/24 10:08
우와 아무리 그래도 정말 일년에 두번밖에 집에를 못간다면 무엇을위해 사는건지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하지않나요...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4 18:42
gw8님, 그렇죠?
한편,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회사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지만요.
Commented by 돌아선사람 at 2011/01/24 10:08
많이 힘드시겠네요.
하지만 그런 회사가 굴러가잖아요. 신기하게도.
돈도 웬만큼 버는것 같고.
터닝포인트를 한번 잡아 보시는 것도 좋지 싶네요.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4 18:42
굴러가는 정도가 아니라,
국내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으니 문제인거죠.
좋은 문화를 가진 기업이 더 훌륭한 업적을 만들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김진섭 at 2011/01/25 19:04
헐... 공부하고 있는 제가 더 편해 보는데요 :-(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6 18:38
비교할바가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려다가 생각해보니
학교도 참 힘들죠. 까다로운 교수님 만나면 하하
진섭님 교수님은 어떠신가요?
Commented by 김진섭 at 2011/01/28 00:29
보통 9시에 출근에 11까지 있고요 (명절을 제외한 주말은 평일과 같이 지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신념으로 밤은 절대 새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외국 학위를 따셔서 그런지 공부 습관이나 학술적으로 무시당하는 때가 빈번한 편이고, 일을 병렬로 처리하시기를 원하셔서 일을 스케줄링 하는 것이 나름 어려운 것 빼고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네요. :-)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서 공부를 많이 시키시는 편이라서 행복한 편이죠...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8 19:55
상당히 오랜시간이네요~ 11시면 조금 무리스러워 보이기는 합니다.
건강을 잘 챙기셔야 할텐데... 잘 하고 계시겠죠.
교수님의 높은 기대치 때문인거죠.
학교에서 대충하다가 회사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거죠.
진섭님은 훌륭한 학교 생활을 하고 계시네요~ 부러워요.
Commented by 장우현 at 2011/01/27 11:39
읽다 보니 처음에는 이상하고 조그만 회사일꺼라는 생각을 했는데, 뒤쪽으로 가 다 보니 모두가 알고 있는 회사일것 같습니다. 특히 1년에 집을 2번 가신 이사님 이야기를 들으니 확신마저 듭니다. :)

예전에 같이 일하던 그곳, 그 파트를 챙기시는 분이 입사후 지금까지 출근 안 하는 날이 몇번인지 손으로 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황당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더군요. 무엇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구요.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7 17:12
장우현님, 반갑습니다.
Anonymous로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인 것 같아 좋습니다.
네에, 그 회사 맞는 것 같습니다.
'파트' 라는 단어, 후배가 사용하는 단어하고 같네요.
그곳에서 일하는 후배나 지인은 실명을 말하지 않더라고 자기 회사인줄 알더군요.
덕분에 몇 명하고 반가운 연락까지 했고요. ^^
아직은 공장 문화가 남아 있는 것 아닌가 하더군요.
두려움의 문화를 버리고, 소프트웨어 친화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스피닉스 at 2011/01/27 15:55
수명다한 건전지처럼 배터리 다되면 나가라는군요. 점점 더 심해지겠죠.
언젠가는 사람의 중요성을 알게되겠죠. 아쉽네요. 저렇게해도 회사가 잘나간다는게...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1/27 17:12
그러게요, 스피닉스님.
저도 이 부분은 100%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싸울 수 있도록
100년이 지나서도 유해를 발굴하거나,
포로가 된 병사는 반드시 구해낸다는 이유를 모를리 없을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kalstein at 2011/02/17 13:29
회사는...저랑 같은것 같군요. (몇가지 단어들이 ㅋㅋ)
저희도 바쁠땐 꽤 하지만... 그외에는 널럴할때도 있는데 말이죠.

외국계 회사에서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한 경우가 참 많은것 같더군요.
임원으로 스카웃을 해서일까요?
실적을 확실하게 회사에 보여줘야하기 때문일까요?

저도 첨엔 외국계 기업에서 누가 왔다더라~ 하면 '오 좋은분이겠구나' 싶었는데, 알면 알수록... 오히려 그냥 국내기업 계시던 분이 더 나은듯.
실적위주의 외국기업과, 엄청난 야근시간의 국내기업... 개발자들에게 힘든것만 다 합쳤달까요 ㅎㅎㅎ
Commented by 제임스 at 2011/02/18 15:58
Kalstein님도 그곳에 다니셨던가요? 하하
그래도 점심시간에 블로깅을 할 수 있나 보네요.

외국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문화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배웠느냐가 중요하겠죠.
하긴, 한 개인이 어떻게 문화를 바꾸겠습니까.
적응하거나, 떠나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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