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의천 15년 이야기


일요일 아침, "솨아~~" 하는 소리에 잠을 깹니다.
태풍 갈매기가 데려온 세찬 빗소리죠.
"아차! 회사 창문 열고 왔네~ 이런..."

겸사겸사, 배낭을 메고, 모자를 쓰고, 회사 출근길에 나섭니다.
늘 틈만 나면 천변을 따라서 출근을 하거든요.
이 곳은 '학의천' 이라고 부르는데, 이름만큼이나 많은 학이 있습니다.
대략 2~300 미터 정도 마다 한 마리씩 서있는 정도랄까요.

그 중간 중간에는 오리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죠.
얼마 전만 해도 갓 태어난 아기 오리들이 엄마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는데,
이제는 그 녀석들도 다 커서 어른이 된 듯싶네요. 하하

집을 나서니, 다행히도 빗줄기가 얇아 집니다.
그래도 천변에 도착하니, 밤새 내린 비의 양이 느껴지는 군요.
평소에 건너던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겨 있고,
천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나 주차장도 군데군데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학의천에는 물고기가 아주 많습니다.
붕어도 있고, 송사리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또 메기도 있습니다.
1미터 정도의 커다란 잉어도 쉽게 발견할 수 있고요.
아니나 다를까 물속에 살짝 잠긴 산책로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퍼덕퍼덕 거립니다.
길은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다른 생물들에게는 재앙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저 앞 한 아저씨께서 무엇을 줍고 계십니다.
뭘 하시나 다가가보니, 침수된 천변 주차장에서 헤매고 있는 게를 잡고 계셨습니다.
족히 10센티는 넘어 보이는 군요. "잡았다" 하시면서, 강에다가 놓아 주십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이곳이 이렇게 가꾸어 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전염되었는지, 한 마리를 발견해서 기분 좋게 강에 던져 줍니다.

그런 기분 좋음에 길을 가다 보니, 서있을 곳을 잃은 학이 산책로를 막고 있군요.
저를 보고, 훌쩍~ 길을 비켜줍니다.
손 한뼘 만한 게들도 열심히 산책로 위를 뛰어 다닙니다.
50센티는 되어 보이는 자라도 저를 발견하곤 후다닥 도망가는 군요.



2키로 조금 넘는 산책길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안양천의 지류인 학의천은 15년 전만 하더라고 악취가 풍기는 죽어있는 하천이었죠.
물고기 구경하기는 힘들었고, 그나마 살고 있는 녀석들도
비만 오면 오폐수를 버리는 바람에 떼죽음을 하곤 했습니다.
물고기가 없으니, 학의천에 학이 있을 리도 없지요.

그랬던 것이 1994년에 이른바 '안양천 살리기' 사업으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5급수였던 수질이 지금의 2~3급수로 좋아지게 됬다고 하는군요.
그 덕분에 '자연형 하천'의 국내 최초 성공 사례가 되었다고도 하고요.
(청계천 안타깝습니다. 지혜의 부족이죠. 하하)

사업에 대해서 제가 거의 아는바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며
용기를 내어 변화를 이끌어 내었던 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께 감사하고,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에 어떻게 그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엔지니어들을 만나게 됩니다.
엔지니어의 수만큼, 많은 가치관의 차이를 보이죠.
어떤 분들은, "이 정도면 됐어' 하시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어떻게 하면 완벽할 수 있을까?"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분들의 생각은 1급수이고,
어떤 분들의 생각은 5급수인 셈이죠.
소프트웨어도 함께 일을 하여 만드는 작품이다 보니,
품질은 하향 평준화 되어 버립니다.

1급수와 5급수를 섞으면 5급수가 되는 거죠.
그것이 결과물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팀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회사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제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우리나라의 팀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겁니다.
15년 전의 안양천 같지는 않아도, 그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앞으로 15년 후를 내다보면서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노력을 한다면,
우리 모두가 1급수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러면 머지않아, 학도 돌아오고, 게도 돌아오고, 자라도 볼 수 있겠죠.

그때야 말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저는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나저나, 창문 열고 가기를 잘했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by 제임스 | 2008/07/20 11:16 | 메인스토리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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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oondark at 2008/07/20 16:30
 오랜만에 쓰신 글 같네요. 북환 관광 문제나 대규모 시위 등으로 씨끄러운 이때에 비올때 차분히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임스님이 생각을 했듯이 말이죠.
Commented by ☆션☆ at 2008/07/20 22:42
오랫만이셔요. 잘 지내시는거죠?

1급수와 5급수를 섞으면 5급수가 된다는 말씀.
정말 두려운 일이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되네요.
가끔, 전 일에 따라 2급수가 되기도 하고, 5급수가 되기도 하는데
좀 일관된 수질(?)을 유지해야 겠단 생각을 하게되네요.

저도 고맙습니다. 헤헷~ ^^;;
Commented by Ronie.Kang at 2008/07/21 13:40
IT 내용은 ^^ 빼고 하천으로만 본다면... 저희 회사는 분당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정자역과 수내역 사이에 있습니다.

분당에도 "탄천"이라는 작은 천이 있습니다. 이곳도 "자연형 하천"으로 전환
하면서 부터 개천에 오리와 물고기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연형 하천이라는 것은 인공적인 변형을 가하지 않은는 자연 상태의 하천입니다.
쉽게 양쪽에 콘크리트로 뚝을 쌓거나 중간에 제방으로 막아 놓지 않고,
그냥 마음대로 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이런 하천은 구블구블하고 유속도 불규칙하며 일단 ^^ 물도 깨끗해지고
수풀이 무성하여 수상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죠.
또한 오리녀석들이 풀숲에서 살수도 있구요.
이런 곳이 바로 "습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네이뇬을 조금 참조 해서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3년을 지켜 보며 물이 깨끗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년이 더 지난다면 물에서 뛰어 노는 사람들도
볼수 있지 않을까 기대 해봅니다.

감사 합니다.
Commented by Flow at 2008/07/22 00:48
오랜만의 제임스님 포스팅이네요! ^^
간만에 들러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ㅎㅎ
Commented by zzugg at 2008/07/22 01:46
가끔 들르던 방문자입니다.
간만에 좋은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1급수 향해 오늘도 노력하렵니다.. ^^
Commented by 제임스 at 2008/07/22 08:04
loondark님// 맞습니다. 그 동안 참으로 시끄러웠죠? 그 동안 제 머리 속도 조금 엉클어져 있었네요. 하하. 근데, 요즘 어떻게 이렇게 자주 접속하시죠? 벌써 제대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좋네요.

션님// 오~ 션님 ^^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네요. 어디 가면서 언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한 친구요. 네, 조금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션님 소식도 전혀 모르네요. 블로그 좀 읽으며 따라가야겠습니다. 항상 즐거우시고요.

Ronie.Kang님// 분당 탄천 좋은 곳에 사무실이 있네요. 그 곳도 여기하고 같은 개념이네요. 머지않아서 오소리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가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에 기분도 좋아지네요.
Commented by 제임스 at 2008/07/22 08:04
Flow님//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정신이 없었고요. 지금도 비슷하네요. 하하
Flow님은 일터에서 잘 적응하시는지 궁금하네요.

zzugg님// 네, 저도 감사합니다. 저희 팀부터 1급수 팀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씩의 개선조차 참으로 힘드니 갈 길이 멀고도 머네요. zzugg님도 즐거운 노력 되시고요.
Commented by Paromix at 2008/07/23 13:10
오랫만이에요 제임스님.^^
가끔씩 제임스님의 생각을 살짝이나마 들여다보고 있으면 왠지 힘이 솟는다니까요.^^
Commented by 제임스 at 2008/07/24 08:02
정말 오랜만이에요. Paromix님
항상 좋은 말만 해주셔서, 진짜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언제나 건강 챙기면서 신나게 일하시고요 ^^
Commented by qkrwlgus at 2010/05/12 22:41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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